특집 다큐: 호주에 거주하는 탈북민과 한인 동포, '음식으로 하나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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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샤인 코스트에 거주하는 탈북민 최금영 씨가 북한 음식 두부밥을 만들고 있다. Source: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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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 ways to listen

북한 순대, 두부밥, 언감자떡 등 북한 전통 음식이 호주에서는 처음으로 시드니에서 선보여졌다. 민주평통 호주협의회에서 주최한 재호남북통일가족 한마음 축제에서 호주에 거주하는 탈북민 8명과 그 가족 그리고 남한 출신 이민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음식과 노래로 교류하는 보기 드문 자리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Key Points
  • 지난 4월 6일 시드니에서 개최된 재호남북통일가족 한마음 축제
  • 호주에 거주하는 8명의 탈북민과 그 가족 등 25명과 약 60여 명이 모여 음식과 노래로 문화 교류
  • 선샤인 코스트 탈북민 최금영 씨, 15살에 탈북해 한국을 거쳐 2015년 호주에 정착하기 까지 긴 여정을 공개

시드니에 선 보인 전통 북한 음식

곱게 빚은 만두,

돼지 피에 각종 야채와 찹쌀, 다른 부속물을 넣고 삶은 순대,

튀긴 두부 사이에 흰 밥을 넣고 매콤한 양념을 올린 두부밥,

검은색 송편처럼 생긴 언감자떡,

노란 옥수수 가루를 뭉처놓은 속도전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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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식 만두, 순대, 두부밥(왼쪽), 언감자떡(오른쪽 위) , 속도전떡(오른쪽 아래) Source: SBS / Leah Hyein Na
얼핏보기에는 일반적인 한식같지만 어딘지 뭔가 생소합니다.

모두 북한을 대표하는 음식이기 때문인데요.

북한 요리가 호주에서는 처음으로 지난 6일 시드니에 선 보여졌습니다.
순대를 제외하고는 대 부분 야채와 콩, 곡물로 만든 소박한 음식.

하지만 식량난이 심했던 북한에서는 잔칫날에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7년전 시드니에 정착한 탈북민 조경옥 씨입니다.

/시드니 거주 탈북민: 집에서는 이것도 귀한 음식이에요. 그래서 집에서는 못 만들어요. 시장 저 같은 개인적으로 시장에서 많이 사서 그랬어요. 비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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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최금영 씨와 조경옥 씨가 찹쌀을 넣은 북한식 순대를 만들고 있다. Source: SBS / Edwina Guinan
노란 옥수숫 가루에 찬물을 섞어 단숨에 만드는 속도전 떡.

일명 펑펑이 떡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이미 높은 압력과 열에 찐 옥수수를 갈고 말려서 만든 것이라,

전기와 가스, 석탄이 없어도 몇 분만에 손 쉽게 만들 수 있는

북한의 대표적인 간편식입니다.

놀랍게도 이날 사용된 옥수숫 가루는 실제로 북한에서 왔습니다.

어떤 경로를 통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북한의 어딘가에서 중국으로 반출돼,

한국의 탈북민에게 전달됐고, 호주의 탈북민에게까지 배송됐습니다.

고향에서 온 옥수수 가루에 찬 물을 넣어 치대던

퀸즐랜드 선샤인 코스트에서 온 탈북민 최금영 씨.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 오릅니다.

최금영/선샤인 코스트 거주 탈북민: 배고플 때 엄마가 이걸 해 주면 그렇게 좋았어요. 이 가루가 있으면 정말 든든했어요. 어렸을 때 많이 드셨어요 이거 그렇죠 엄마가 나가면 우리 애들끼리 앉아서 그냥 이렇게 비벼서 이걸 먹는 거예요. 똑똑하게 이런 식으로 먹는 거예요. 그때 너무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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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최금영 씨가 북한에 서 온 옥수숫 가루로 속도전 떡을 만들고 있다. Source: SBS / Laszlo Mizsak
하지만 추억의 음식이 꼭 좋은 기억만을 소환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금영/선샤인 코스트 거주 탈북민: 가끔 좀 이걸 보면서 가끔 울어요. 혼자 왜냐하면 배고프던 시절 이것만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거 하나 없어서 친구들이 옆에서 많이 굶어 죽었거든요. 그래서 그때 너무 그러니까 이 사연이 있는데 펑펑이 떡 하나 먹는 게 소원이라고 친구가 그 말을 했어요. 그리고 그다음 날 죽었거든요. 아사했거든요. 그런 거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아프죠.

이날 호주 전역에서 모인 약 25명의 탈북민들은

오래 전 기억 속의 고향 음식을 요리하면서

달고, 쓰고, 매웠던 과거의 기억을 회상했습니다.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고향의 음식

이 날의 북한식 잔칫상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호주협의회가 주최한

재호남북통일가족 한마음 축제에서 차려졌는데요.

약 60여명의 시드니 한인 동포들이 탈북민과 함께

서로의 문화를 체험하고 이해를 넓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호주협의회의 최성환 수석 부회장은

처음 맛 본 북한 음식을 맛있게 맛 봤습니다.

최성환/민주평통일 호주협의회의 수석 부회장: 같은 동포로서 따뜻한 맛을 느끼고 있습니다. 처음 먹어봤지만 좀 익숙하다는 맛은 보지 않았는데도 어딘가 기억할 수 있는 그런 맛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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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호주협의회의 최성환 수석 부회장은 처음 맛본 북한 음식에서 "같은 동포로서 따듯한 맛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 Source: SBS / Laszlo Mizsak
북한 요리에 화답하는 남한의 요리로는

남북의 만남을 축하하는 의미로 잔치 국수가 올려졌습니다.

풍성하게 차려진 음식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굶주림을 떠올리게 합니다.

퀸즐랜드 주민인 탈북민 이광진 씨입니다.

이광진/선샤인 코스트 거주 탈북민: 제일 힘들었던 기억은…  저희 3형제인데 먹을 게 없어서 한 3일 동안 집에 누워만 있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또 겨울에는 또 에너지도 당연히 음식이 없으니까 에너지도 빈곤이 허덕이다 보니까 좀 추운 온돌바닥에 3일 정도 굶어서 누웠던 기억이 있는데 그게 제일 잊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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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이광진 씨는 현재 선샤인 코스트에 거주하고 있다. Source: SBS / Laszlo Mizsak
20년 전 온 가족이 목숨을 걸고 탈북을 해야 했던 것은

굶주리지 않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다고 이광진 씨는 말합니다.

이광진/선샤인 코스트 거주 탈북민: 궁극적인 이유는 사람들은 이념이라고 생각하는데 저희는 뭐 사람의 첫 번째 본능이 식욕이잖아요. 그래서 배고파서 탈북했죠.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는… 2000년도 그 전부터 생각했었고 사실 그거를 직격탄으로 맞은 세대가 저희가 85년 세대인데 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제일 또 성장 시기가 그때 딱 겹쳐서 제일 타격이 컸던 것 같습니다.

호주에 정착한 탈북민 최금영씨의 탈북 여정

이광진 씨보다 약 3년 앞선 1997년

부모님과 4남매, 온 가족이 탈북을 했던 최금영 씨 역시

굶주림에 지쳐 북한을 떠났습니다.

최금영/선샤인 코스트 거주 탈북민: 북한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배고픔이었죠. 친구들이 굶어 죽어가고 먹을 게 없어서 학교 대신 풀도 들러 가야 하고 그런 게 너무 우리한테는 고통이었죠. 대부분 탈북민들이 탈북을 했잖아요. 그분들한테는 배고파서 탈북을 했지 정치적 뭐 의미나 그런 게 없어요. 사람이 기본적으로 먹는 거는 딱 쳐줘야 그 이상의 그다음의 것을 생각하는데 저희 북한 사람들한테는 북한 백성들한테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받아야 하는 그 이 식량마저 허락이 안 된 거예요. 그래서 늘 배고파서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죠.

15살의 나이로 한 겨울 꽁꽁언 두만강을 건너 탈북한 최금영 씨.

최금영 씨는 북한의 악명높은 탄광인 아오지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김일성 독재 체제에 반대한 할아버지가 처형 당한 뒤

할머니와 아버지는 아오지 탄광으로 보내졌습니다.

아버지는 그 곳에서 어머니와 만나 가정을 꾸렸고

30년 간 광산에서 일하며 금영씨 사 남매를 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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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찍은 최금영 씨 가족 사진; 할머니, 부모님 그리고 4 남매. 오른쪽 앞 줄이 최금영 씨 Source: Supplied / Kumyoung Choi
자식들에게까지 미래가 없던 삶이었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선샤인 코스트 거주 탈북민: 아빠는 북한에게 세뇌교육을 시키잖아요. 그런데 저희에게 항상 집에서 교육을 시켰어요. 아 이건 잘못됐다고 그렇게 항상 이중 교육을 받았어요. 북한에서는 학교 가면 세내 교육 집에서는 아빠가 이 사람은 자유가 있어야 한다. 이 나라는 언어의 자유도 없고 이동의 자유도 없고 잘못됐다. 직업에 대한 자유도 없다. 그렇게 배우다가 아빠가 저희가 4남매거든요. 크기를 기다렸는데 저희가 한 제가 만 15살 막내가 11살 때 아빠가 이제 탈북하자 하고 아오지 탄광 최초로 저희 북한을 떠났어요.

하지만 북한을 떠나고서도 금영 씨 가족은

무려 3년 반이란 세월을 중국에서 떠 돌아야 했습니다.

한국에 가기 위한 갖은 노력은 실패했고, 목숨을 잃을 위기의 순간도 여러번…

하지만 아오지 출신에게 북송은 죽음 뿐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가족은 지도 한 장에 의지해 중국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무사히 중국 국경을 넘고 미얀마에 도착했지만,

온 가족이 한순간에 미얀마 경찰에 체포됐고

그 가운데 홀로 도망친 18살 금영 씨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두 달동안 깜깜한 밤길을 혼자 걸어 목적지 태국에 도착한 금영 씨.

우여 곡절 끝, 방콕 한국 대사관에서 난민 신청을 했고

미얀마에 갇힌 가족에 대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금영 씨 가족은 극적으로 2021년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선샤인 코스트 거주 탈북민: 누구에게는 태어나서 자유라는 게 그냥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한테는 자유라는 게 그렇게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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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탈북해 중국에서 4년 가까운 시간을 고생한 최금영 씨는 2001년 서울에 도착했다. Source: Supplied / Kumgyoung Choi

“북도 남도 없는 곳, 호주”

한국에만 가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믿음.

그래서 목숨을 건 여정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도착한 한국은 기대와는 다른 곳이었습니다.

최금영/선샤인 코스트 거주 탈북민: 저희는 저기 탈북을 해서 한국으로 가야지 했을 때 정말 한국 가면 잘 살 거고 한국 사람들이 저희를 환영해 줄 거고 그런 생각을 하고 왔어요. 왔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차별이라는 게 있는 거죠.  아 북한 그러니까 왜냐하면 서로가 서로가 갈라져서 서로 반공 교육을 남한에서는 받았잖아요. 우리도 남한이 안 좋다고 교육을 받았고 그런 교육을 받다 보니까 저희가 남한에 갔을 때 제가 대학교를 다녔거든요. 그런데 어떤 교수님이 너 간첩질 하는 거 아니지?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나는 배고파서 탈북을 한 건데 그런 말을 들으면서 많이 울었죠.

호주의 대표적인 북한 전문가인 UTS의 브론웬 달튼 교수는

실제로 많은 탈북민들이 한국에서 차별을 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브론웬 달튼/UTS 교수: 종종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로부터 어느 정도 불신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스파이라고 우려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한국 국민의 사회적 규범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 자원을 낭비한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탈북민들은 자신들이 북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 그런 종류의 차별을 받고 싶지 않아, 북한 액센트를 없애고, 남한 사람들처럼 옷을 입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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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S 대학의 브론웬 달튼 교수는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어느정도 불신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Source: SBS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던 금영 씨는 결국 2015년

남한 출신인 남편과 1살, 3살 두 아이를 데리고 호주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최금영/선샤인 코스트 거주 탈북민: 제일 서러웠던 거 같은 민족한테 차별을 받고 무시받는 게 너무 서글펐어요. 그때 아 남과 북이 없는 곳으로 가자. 그게 호주였어요. 호주에 오니까 남한에서 태어난 사람도 북에서 태어난 사람도 다 이민자였고 또 특히 호주 사람들은 노스코리아 사우스 코리아에 대한 편견이 없는 거예요. 아 내가 북한을 탈북했다면 제 스토리를 너무 아름답게 받아주고 좀 존경한다고 하고 그 모습에 아 그 뭐죠 그런 차별에 대한 서러움은 못 느꼈죠.

선샤인 코스트의 성공한 사업가이자 유튜버인 최금영 씨

그 누구보다도 악착같이 열심히 살아온 금영 씨.

이제는 선샤인 코스트에서 8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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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영 씨는 지금 선샤인 코스트에서 8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Source: SBS / Laszlo Mizsak
그리고 3년전부터는 유튜브에서 아오지 언니라는 채널을 개설해

자신의 탈북과 호주 정착 경험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약 6만 명 이상이 금영 씨의 채널을 구독하고 있습니다.

최금영/선샤인 코스트 거주 탈북민:  
그래서
. 그런데 내 꿈이 또 한 누구에게는 또 또 꿈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유튜브를 시작했거든요.

금영 씨는 유튜브 채널을 보고 연락해

호주 정착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탈북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가게 창업을 돕는 등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최금영/선샤인 코스트 거주 탈북민: 제가 탈북을 해서 중국 미얀마 태국까지 가고 또 한국까지 가서 적응할 때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는 제 동생들도 다 여기 호주 이민 왔거든요.
그래서 도와주다 보면 힘들 때도 있지만 그분이 그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혼자 살아나가잖아요. 그걸 보면 너무 뿌듯한 거예요.

호주에서의 남북 교류가 갖는 의미

2021년 호주 센서스 인구조사 결과

호주에 사는 남한 출생자수는 10만 2166명,

반면 북한 출생자는 극 소수인81명으로 집계됐습니다.

하지만 이 숫자에는 전쟁 전 북한을 떠난 실향민들도 포함돼 있어

실제로 탈북자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 금영 씨의 유튜브을 보고 연락을 하는

탈북민들의 빈도가 늘고 있다니

코로나19가 끝난 뒤

탈북민들이 조금씩 호주에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미 선샤인 코스트에는 금영씨와 인연을 맺은

탈북민과 그 가족 30여명이 지난 몇년 새에 정착했습니다.

한국을 떠난 해외에서

이렇게 많은 수의 탈북민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남한 출신 이민자들과 함께 교류한다는 것은 실로 매우 드문일입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호주협의회 자문위원인 라이드 카운슬 한정태 부시장입니다.

한정태/민주평통 호주협의회 자문위원, 라이드 카운슬 부시장: 아마도 호주에서 북쪽과 남쪽 사람들이 같이 만난 유일한 기회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은 서로가 서로에 대한 편견없이 서로를 이해할 때 사람들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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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통 호주협의회 자문위원인 한정태 라이드 카운슬 부 시장은 남북의 이런 교류가 매우 드문 기회라고 말했다. Source: SBS / Laszlo Mizsak
여기에 더 나아가 UTS 대학의 브론웬 달튼 교수는

작년 연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관계’로 공식화하고

대남정책을 근본적 전환을 선언한 만큼

앞으로 이런 남북 교류의 기회는 더 드물어 질 것이라고 전망하며 이번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달튼 교수입니다.

브론웬 달튼/UTS 교수: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구축할 수 있는 모든 기회가 매우 중요한데, 호주가 이 인적 교류의 장소라는 점이 또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것이 한번도 평화의 새로운 시대를 이룰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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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통 호주협의회에서 주최한 재호남북통일가족 한마음 축제에 참가한 25명의 탈북자 가족과 60여 명의 한인 동포들. Source: SBS / Leah Hyein Na
호주에서 이뤄진 남북의 만남을 통해 한인 이민자들은 호주에 먼저 온 앞선 이민자로써 신규 이민자인 탈북민을 돕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최성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 부회장입니다.

최성환/민주평통일 호주협의회의 수석 부회장: 같은 동포로서 너무 기쁘고 또 이분들이 호주 사회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기존 저희들 한인들이 많이 도움이 되기를 원합니다.

탈북민들은 이 자리를 통해 호주 한인 사회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탈북민 이광진씹니다.

이광진/선샤인 코스트 거주 탈북민: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의미 있고 또 호주에서 한인 사회가 아닌 한인사회 안에 또 북한에서 오신 우리 저 같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어서 좀 색다른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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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 모인 8명의 탈북민과 그 가족들 Source: SBS / Leah Hyein Na
금영 씨는 이 자리가 탈북민의 가능성을 한인 사회에 보여줄 수 있는 자리였다고 말했습니다.

최금영/선샤인 코스트 거주 탈북민: 엄청 도움이 되죠. 서로 알아가고 이 사람들도 자유가 주어지고 이런 환경이 오면 아 우리처럼 이렇게 잘 살 수 있구나. 이런 걸 알게 되고 서로가 동등하다는 걸 알게 되죠. 왜냐하면 남과 북이 갇혀져 있어서 서로가 동등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만나면 더 동동하다고 생각하죠.

“북쪽에 피는 꽃도 꽃이고, 남쪽에 피는 꽃도 꽃이고…” 탈북자 가정 아이들과 시드니 한인 동포 아이들은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공연 참가 학생: 이렇게 저희 어린이들처럼 서로 약속하고 사회주기를 지내면 세계 평화가 금방 오지 않을까요? 북쪽에 피는 꽃도 꽂히고 남쪽에 피는 꽃도 꽂히고 어디에 피어도 꽃인 것처럼 이제는 세계가 하나인 세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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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꽃이야' 노래를 다 같이 부르는 탈북민 가정과 한인 동포 가정 아이들 Source: SBS / Laszlo Mizsak
마지막 무대에 선 북한 탈북민과 남한 이민자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그리고, 홀로 아리랑을 부르며

금영 씨와 몇몇 탈북민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최금영/선샤인 코스트 거주 탈북민: 우리 민족 노래 아리랑이라고 있잖아요. 그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나는 거예요. 저희는 정말 남북한이 갈라져 있고 자유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탈북해서 한국까지 갔잖아요. 우리는 몸으로 정말 이걸 체험했잖아요. 그래서 그런 노래가 나올 때마다 온 우리 탈북민들이 울어요.

최근 한국에서 실시된 통일 의식 조사들을 보면

통일을 바라는 이들의 비율은 40%를 겨우 넘어 섭니다.

통일이 필요치 않다고 답한 60% 대한민국 대다수에게

탈북민 최금영 씨는 호소합니다.

최금영/선샤인 코스트 거주 탈북민:


남북이 하나되는 그날을 위해

호주에서 먼저 손에 손을 잡고 평화의 노래의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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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거주하는 탈북민과 한인 이민자들이 같이 평화의 노래를 부른다. Source: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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