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인터뷰: 특전사 출신 플러머 이남기 씨 "안되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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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이어 호주에서도 자신의 전문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이민자들을 만나보는 시간. 플러머(plumber)로 활동하고 있는 이남기 씨를 만나본다.


홍태경 PD: 오늘은 호주에서 플러머로 근무 중이신 이남기 씨 만나보겠습니다. 지금 연결돼 있는데요. 안녕하세요.

이남기 씨: 안녕하세요.

홍태경: 반갑습니다. 제가 현재 하시고 계시는 일을 플러머(plumber)라고 소개를 드렸는데 좀 간단히 하시는 업무 좀 소개 부탁드릴게요.

이남기: 말씀 주신 것처럼 캔버라에서 플러머(배관기술자) 일을 하고 있고요. 같이 일하시는 분이 총 한 13분 정도 되고요. 그 다음에 도메스틱 하우스에서부터 어느 정도 사이즈 되는 커머셜까지 플러밍을 하고 있습니다.

홍태경: 플러머로 그럼 얼마동안 일을 해오신 거예요?

이남기: 제가 호주 오면서부터 시작을 해가지고요. 2003년도에 와서 지금까지 해오고 있으니까 한 20년에서 21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홍태경: 굉장히 전문적인 플러머로서 긴 경력을 가지고 계신데요. 이렇게 호주에 와서 플러머로 일하시게 되기까지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이남기: 좀 나름대로는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2003년도에 처음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라는 비자로 호주를 오게 됐고요. 올 때 크게 계획이나 이런 걸 가지고 오지 않았어서 여기 와서 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잡서치(job search)를 하다가 플러머를 찾는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때는 제가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도 제한적이지만) 그래서 사전 찾아보고 ‘플러머가 배관공이네’ 한번 해볼까 하고 그때 시작한 게 계기가 돼가지고요.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홍태경: 그래도 20년 넘게 꾸준히 일을 하실 수 있었던 것은 보람과 또 성취가 있으시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이남기: 그래도 나름대로는 이 플러머라는 직업을 가지고 일하면서 많은 보람도 느끼게 되고 또 앞으로의 나름대로의 비전 이런 것도 같이 생각할 수 있어서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홍태경: 그런데 2003년에 호주로 이주를 하시게 될 때 처음에는 워킹 홀리데이라는 좀 가벼운 마음으로 오셨지만 사실 지금의 이 직업을 갖기까지는 이전 직업과의 연관성도 생각하셔야 될 것 같은데 이전에 한국에서는 굉장히 또 다른 직업을 갖고 있으셨다고 들었어요.

이남기: 네. 여기 오기 전에는 한국의 많은 분들이 대부분의 남성분들이 하는 것처럼 군대에서 있었고요. 특별히 그래도 특전사라는 특수부대에서 짧지만 한 4년 6개월 정도 복무를 하다가 끝나고 그 다음에 이주를 결심하게 됐어요.

홍태경: 그럼 특전사 출신 플러머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남기: 그래서 삽질은 잘하는 것 같아요. 하하하.

홍태경: 그럼 지금 플러머 일을 하시면서 그 특전사 때 여러 가지 정말 특별한 경험을 하셨던 것이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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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네. 도움이 안 된다고 그러면 그건 거짓말일 것 같고요. 아무래도 아무것도 모르고 그때 당시에 비행기표만 가지고 왔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자마자 도착하는 첫 날 일을 잡아서 그 다음 날인가부터 일을 시작했었어요. 그래서 물론 생각이 없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어쨌든 (새로운 일에) 부딪혀보는 그런 것에 그렇게 두려움이 없어서 그렇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어렵지 않게…

홍태경: 그게 바로 특전사 정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처음 호주에 도착하셔서 바로 그 다음 날 구인광고를 보신 게 플러머였던 거군요.

이남기: 그렇죠. 네네.

홍태경: 굉장히 힘든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잡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게 구하신 거네요.

이남기: 그때 당시에는 아마 잡을 찾는 분들이 꽤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어렵지는 않게 구했고요. 잡서치를 통해서 금방 할 수 있었고요. 그래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홍태경: 그럼 처음 일을 시작하시면서는 그래도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좀 필요한 요건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어떤 게있었을까요?

이남기: 아무래도 그때는 이제 기술자는 아니었어서 저에게 그렇게 요구하는 것들이 많지는 않았었는데 아무래도 건축 현장이라는 게 그래도 육체적인 노동을 많이 요구를 하잖아요. 그래서 그때 당시에는 아마 젊기도 했었고 좀 아까 말씀드렸지만 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도 있었어서 그때 당시에는 한 7시부터 대부분 한 5시-6시 그렇게까지 한 6일 동안은 꼭 일을 했었던 것 같아요.

홍태경: 그렇게 현장에서 근무를 하시다 보면 분명히 힘든 점도 있잖아요. 어떤 부분이 좀 힘드신 게 있었을까요?

이남기: 아까 말씀드린 대로 육체적인 그런 요구가 많으니까 일을 많이 하다 보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손이 펴지지 않더라고요. 너무 강도가 높은 육체적인 일을 하다 보니까 좀 아침에 일어나서 막 손이 안 펴져서 손을 마사지하고 그렇게 일을 나갔던 기억도 있고요. 쇼핑센터나 이런 데는 일을 또 늦게까지 하다 보니까 한 주에 한 많게는 70~80시간까지도 일을 했었던 것 같아요.

홍태경: 정말 열심히 사셨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점도 있고 힘든 점이 있었던 만큼 또 보람된 일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 사례가 있을까요?

이남기: 아무래도 플로머라는 직업 자체가 여기 사시는 분들하고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성이 돼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물을 써야 되는데 물이 안 나온다든가 또 하수가 잘 안 돼서 고생하시는 분들든가 이런 분들이 굉장히 많으셔서 그때 많은 요구가 있을 때 바로 가서 해결해 드리면 너무 좋아하시고 또 거기서 오는 보람이 너무 크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아마 지금까지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한번 해보거든요.

홍태경: 지금까지 지나온 과정을 좀 생각해 보시면 ‘아 이 일을 하기 참 잘했다’, ‘이런 점은 아쉽기도 하다’ 이런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하실 것 같은데 어떠세요?

이남기: 일을 하면서 사실은 가장 제가 아까 보람된 일들도 말씀은 드렸긴 했는데 가장 보람된 일은 무엇보다 제가 아들이 셋이 있는데 무엇보다 아빠의 직업, 아빠가 하는 일에 대한 굉장히 좀 나름대로의 프라이드(pride)를 갖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거를 보면서 ‘내가 직업 선택을 그래도 잘했구나’ 아이들이 편지나 이런 것들을 파더스데이(Father’s Day)나 생일일 때 그럴 때 핸드레터(손편지)를 보내잖아요. 그런 거 볼 때나 그림도 아빠가 하는 공부라든가 툴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그려놓고 ‘아빠가 하는 일이 너무 자랑스러워’ 이렇게 표현할 때 ’호주에서의 플로머는 정말 할 만하구나‘라고 생각이 많이 들고요. 그래서 또 다른 분들이 이렇게 많이 문의를 해 오실 때 저는 정말 적극적으로 추천을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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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태경: 어떤 부분에 있어서 추천하시는 포인트가 있을까요?

이남기: 한국하고 조금 비교를 하자면 좀 한국은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것, 또 플러머는 한국에서 용어 자체도 배관공이잖아요. 그래서 거기서는 좀 직업 자체를 약간은 뭐라 그럴까요? 조금 낮게 보는 경향이 아무래도 있는 것 같아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호주라는 사회 자체가 평등하기도 하지만 또 플러머라는 그 직업을 좀 그래도 인정해주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일을 선택한 게 너무나 감사하고 또 아까 말씀드린 아이들한테도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아빠가 될 수 있어서 저는 너무너무 감사하고 그런 측면에 있어서 저한테 물어오시면 너무 좋은 직업이라고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또 하나는 일이 굉장히 좀 다양해요. 플러머라는 것 자체가 말씀드렸듯이 드레니즈(drainage 배수)는 땅 속의 일을 하게 되고요, 장비, 포크레인 일…그런 것부터 해서 가스, 식수 이런 일들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커머셜(상업용)부터 레지덴셜(거주용), 유지보수(maintenance)까지 일의 범위가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그래서 날마다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한 메리트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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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태경: 또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부분이 아무래도 보수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호주에서는 플러머로서 굉장히 높은 보수를 받는다고 알고 있거든요.

이남기: 이건 영업비밀이라 말씀드리면 안 되는데 저희 같이 일하시는 기술자분들을 그냥 예로 드리면요. 연 8만 달러에서 한 9만 그 이상으로 가시는 분들도 있고요. 기술자라고 하면 그 정도는 받으실 수 있으실 것 같아요.

홍태경: 그렇군요. 정말 많은 분들이 지금 이남기 님처럼 한국에서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로 올 계획인 분들도 있을 것이고 여기서 이미 일자리를 찾고 계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 그런 분들에게 좋은 정보가 됐을 것 같아요.
이남기: 그러셨으면 좋겠습니다.

홍태경: 그리고 또 한국에서 호주로 지금 이민을 희망하시는 조언해 주실 수 있다면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이남기: 무엇보다도 한국분들은 성실하고요. 손으로 하시는 기술이 너무 좋으세요. 그래서 한국에서 조금만 그런 부분에 준비만 돼 있으시다고 하면 안 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요. 한국에서는 직업훈련소 이런 데에서 플러밍 비슷한 과정을 하실 수가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아는 한 케이스도 그렇게 조언을 드려서 여기에 지금 정착하고 계신 분도 실질적으로 있고요. 그래서 한국에서 호주에 해당하는 한국의 퀄리피케이션(qualification), 자격증 같은 것을 좀 취득하셔서 경력을 쌓으신 다음에 (호주에) 오시거나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시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홍태경: 그렇군요. 그리고 제가 또 갑자기 든 생각인데 이남기 님 같은 경우에는 특전사 출신으로서 그 특전사 정신을 가지고 호주에 오셔서 이렇게 꾸준히 20년 넘게 한 직업군에서 일을 하실 수 있는 그런 밑바탕이 강한 정신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남기: 아무래도 한국에서 경험했던, 군에서 있었던 경험들이 당연하게 많은 도움이 됐고요. 특전사의 구호가 ’안 되면 되게 하라‘ 이런 구호가 있거든요. 그래서 어렵고 힘들어도 그런 것들을 배웠던 경험들이 살면서 혹은 플러밍을 하면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홍태경: 목소리만 들어봐도 정말 그런 굳은 의지가 있는 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이나 포부가 있으시면 좀 말씀 부탁드려요.

이남기: 큰 꿈이나 그런 것보다는 소소하게 계속하고 있는 일들 계속 하고 그리고 이 땅에서 저 혼자만의 삶 그런 것보다는 제가 이 호주라는 사회에서 받은 게 많아서 같이 나누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은 하고 있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측면에서 한인회 활동도 조금 하고 있고요. 거기서 또 워킹으로 오시는 분들, 또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을 좀 돕는 그런 계기도 있었고요.

홍태경: 정말 많은 분들에게 귀감이 되는 활동을 많이 보여주시는 것 같아서 응원을 하게 됩니다. 오늘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앞으로도 계획하시는 일 모두 잘 이루시길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연결 고맙습니다.

이남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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