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시 무형문화재 1호 손대현 장인, 천 년을 가는 자연의 빛 옻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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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드니한국문화원에 전시된 손대현 장인 작품(왼쪽) 옻칠 시범 중인 손대현 장인(오른쪽) Source: SBS / Leah Hyein 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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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드니한국문화원은 한국 코리아나 화장박물관과 호주디자인센터와 협력해 ‘자연의 빛, 옻칠’ 전시를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손대현 옻칠 장인과 15살 때부터 시작된 칠기 인생 60년을 들여다본다.


Key Points
  • ‘자연의 빛, 옻칠’ 전시 3월 22일-6월 21일까지 주시드니 한국문화원에서 개최
  • 코리아나 화장 박물관 유물과 현대 옻칠 작품등 약 70여 점 공예품 전시
  • 손대현 장인, 고려 시대 나전칠기 유물이 입증하는 “한국 칠기 문화의 우수성”
나혜인 PD: 서울시 무형문화재 1호 옻질장, 손대현 장인님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손대현 장인: 네. 반갑습니다.

나혜인 PD: 먼저 옻칠, 저희가 간단하게는 옻나무 수액을 나무에 바르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요.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사용된 기술이죠.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 주신다면요?

손대현 장인: 사실은 옻칠하면 좀 생소하게 들리실 수도 있겠는데요. 옻칠하면 이제 옻나무 수액에서 흘러내리는 그걸 받아서 이제 그릇이나 여러 가지 이제 용도로 이제 예전부터 사용을 했는데 특히 그것이 가장 꽃피울 때는 고려 때 나전칠기로 그것이 많이 이제 발전하고 또 아름다운 작품으로 세계 각 박물관들에 소장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옻칠의 용도는 너무도 다양해서 물론 나무에도 칠을 하고 또는 뭐 흙에도 이렇게 발라서 칠을 하고 또 도자기 금속 요즘은 또 이제 플라스틱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서 작품들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아주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어요.

나혜인 PD: 손대현 장인께서는 15살때부터 옻칠을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옻칠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손대현 장인: 네. 그 어린 나이에 제가 서울역 근처에 있는 이제 무역회사 사동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그 건물 안에 있던 나전칠기 공방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그곳에 이제 이렇게 놀러 가서 볼 때였는데 어느 날 이제 제가 봐서 이렇게 보고 있는 순간에 이제 마감하는 포장을 하는 단계였는데 아주 아름 깨끗한 흙칠 바탕에 나전 빛깔이 반짝하고 이제 제 가슴이 와서 탁 꽂히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아름답고 나도 이걸 배워서 이 일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그분한테 이제 그 제 의도를 말씀드리고 허락을 받고 그때서부터 이제 60년까지 지금 현재 해온 칠기 인생이 시작됐던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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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무형문화재 1호 손대현 옻칠 장인
나혜인 PD: 그러시군요. 보통 옻이라고 하면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되는 것 같은데요. 옻이 오르신 적은 없으신지요?

손대현 장인: 당연하죠. 처음에 옻칠을 너무나 배우고 싶어서 이제 스승님한테 스스로 정해진 내 마음속에 정해 스승님을 찾아가서 이제 옻칠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처음에 너무 빨리 그 과정을 하고 싶어서 이제 선배님들이 옻칠을 하다가 이제 식사 시간에 이렇게 비었을 때 슬쩍 들어가서 야단 막을 각오를 하고 이제 그 옻칠을 막 해 봤어요. 그리고 마음이 급하고 또 짧은 시간에 너무 욕심을 부려서 작업을 해봤기 때문에 막 손에도 묻고 뭐 이러다 보니 이제 너무 심하게 옷이 제가 오른 거예요. 그래서 얼굴은 퉁퉁 붓고 막 정말 이렇게 막 이렇게 발진이 생겨서 가렵고 그런 상태로 심하게 옷이 올랐었죠. 그래도 그때 옻이 올라서 이제 선배님들이 이렇게 옻이 오르면 넌 작업하기가 힘들지 않겠냐 이런 말에 너무나도 충격을 받아서 제가 몸이 괴로운 거는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단지 이 일을 못하면 어떻게 하나 너무너무 그런 걱정을 했던 기억들이 너무 새롭게 생각이 나네요.

나혜인 PD: 이게 65년 이상 옻칠을 해오셨는데요. 그러면 조금 면역이 생기시나요? 어떠세요?

손대현 장인: 그래서 이제 심하게 옻이 오른 상태로 너무나 절망감에 제가 청량리로 가서 이제 열차를 탔어요. 그 열차를 타고 이제 이렇게 가는데 너무 이제 몸이 옷이 열성이라 몸이 열이 많이 나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 난간에 이렇게 달리는 열차의 난간을 붙들고 그 막 이제 바람을 맞으면서 하니까 온몸이 좀 시원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이제 춘천에 도착해서 이제 내리는데 그 시원한 바람 또는 어떤 영향인지 몰랐지만 얼굴이 이렇게 풍선을 부었던 풍선에 바람 빠지는 느낌 같은 그런 느낌이 나서 이렇게 만져보았더니 정말 부위는 가라앉고 그래서 이제 그 거울을 봤어요. 찾아서 근데 정말 얼굴이 이렇게 부기가 빠지고 이제 이렇게 뭐 딱지 같은 게 군데군데 흉하게 앉아 있는 상태였지만 너무도 개의치 않고 그리고 이제 돌아왔어요. 돌아와서 하룻밤 자고 일어났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몸이 상태가 싹 부기가 빠지고 깨끗한 거예요. 단지 제 얼굴만 그렇게 부석부석하고 그래서 이제 공방에 이제 들어갔더니 선배님들이 깜짝 놀라세요. 어떻게 이렇게 금방 나와서 올 수가 있었냐고 그래서 이제 그 순간을 넘기고 이제 열심히 작업을 했는데 아마도 제가 너무나 옻칠을 하고 싶은 그 갈망과 열망의 정말 빨리 나왔던 건 아니었을까 라는 그런 시시한 생각도 해봤어요.

나혜인 PD: 그럼 그 이후에는 한 번도 옷이 오르신 적이 없으시고

손대현 장인: 그래서 그 옻이 너무도 심하게 올랐다가 이렇게 나와서 그런지 이제 뭐 백신을 맞은 것처럼 그래서 이제 면역이 돼서 여태까지는 뭐 꾸준히 해오고 있지만 전혀 괜찮죠?

나혜인 PD: 그러시군요. 뭔가 한 번 치러야 되는 그런…

손대현 장인: 홍역이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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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 시범 중인 손대현 장인 Source: SBS / Leah Hyein Na
나혜인 PD: 네. 그런 단계였나 봅니다. 옻칠이 한국만의 문화는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중국, 일본에도 비슷한 기술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혹시 서양에서도 옻칠을 사용하나요?

손대현 장인: 제가 알기로는 이제 중국에서 예부터 옻을 많이 했고 이제 중국의 어떤 기법들은 그 옻칠을 여러 번 해서 조각을 해서 마감을 하는 조칠 기법이라고 많이 이제 성행했다고 해요. 그리고 이제 일본 같은 경우는 이제 그 섬나라고 습하니까 뭐 음식 그걸 이제 보관하기 위해서 옷을 많이 사용을 했는데 이제 일본의 기법은 이제 마끼에라고 해서 이렇게 그림을 그려서 거기에 이제 그곳에 금가루나 은유를 뿌려서 마감하는 그런 마끼에의 기법이 발전을 했고요. 우리나라는 이제 통일신라 때 금속을 오려서 평탈로 해서 금태출기라고 이제 성행을 하다가 고려 때 들어가서는 본격적으로 나전을 사용을 해서 고려 때 만들어진 나전경함 같은 경우는 정말 너무도 귀하고 소중해서 세계 각국의 어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런 현실인 거죠.

나혜인 PD: 많은 분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옻칠 공예 중의 하나가 나전 칠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고려 시대 때부터 만들어졌다고 들었는데요. 손대현 장인께서도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을 재현하시는 작업을 하셨었죠. 당시의 기술과 현재의 기술 어떤 차이가 있나요?

손대현 장인: 사실 제가 이제 예전에 종로 어느 서점가를 거닐다가 책을 하나 구했는데 거기에 이제 고려 때 만들어진 국당초문 대모나전 모자합이라는 아주 자그마한 그 합의 사진을 봤어요. 근데 그 보는 순간에도 너무도 한 천 년 전에 어떻게 이러한 작품이 만들어졌을까라는 의구심이 많이 들었고요. 이렇게 이제 상세히 보니까 그 사용된 기법 안에는 금속선 또는 이제 거북 등껍질을 이제 색깔을 복채해서 사용한 것 또 나전 이런 너무도 섬세하게 되어 있길래 한번 그 선조들의 그 기법을 따라가 보자 그대로 재연을 해봤어요. 그 재연을 해보면서 정말 제가 감동을 받고 정말 가슴속에 느껴진 거는 물론 이제 피라미드를 불가사이하게 생각을 하고 뭐 거기에 비할 수도 있겠지만 저한테는 그것에 비할 만큼 경이로웠어요. 왜냐하면 정말 그 시대에 도구나 또 연장 또는 모든 환경이 정말 그 그 오래전 세월의 깨알 같은 그 나전 조각을 정말 하나하나 다듬고 깎아서 몇만 개 들어가는 그런 경함이나 이런 염주합 또는 모삽 이런 곳에 사용을 해서 어떻게 이런 작품들이 만들어졌을까 경외감을 느끼면서 정말 천년 전에 이름 모를 장인을 정말 존경하고 제 마음속에 스승으로 삼고 저도 어떤 작품을 할 때 꼭 이렇게 남아야 할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라는 마음을 그때 느끼고 새긴 것 같아요.

나혜인 PD: 아, 나전칠기 정말 천년을 갈 수 있다고 말을 하지 않습니까? 정말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습니까?

손대현 장인: 네. 그거는 현존하는 유물에서 증명을 해 주고 있거든요. 우리나라가 수많은 전란 속에서도 그 작품들이 어떤 경로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해외에 나가 있는 작품들을 이렇게 또 접하고 또 사진으로 보고 또는 실물로도 이렇게 전시 때 와서 보면 정말 어떻게 이 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그 아름다운 작품 나전의 색깔 또 그 상태의 또 보존의 우수성 이런 걸 보면 정말 천년이 간다는 건 정말 내 눈앞에 현실로 보였기 때문에 저도 뭐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그런 욕심이 항상 들끓고 있죠.

나혜인 PD: 해외에 계시는 동포 여러분께서도 이런 전통 공예품을 갖고 소장하고 싶으신 분들이 많이 계실 텐데요. 나전 칠기가 워낙 고가이기도 하지만 해외로 배송하는 데는 문제가 없나요?

손대현 장인: 사실은 저도 이제 제 작품들이 해외로 나가는 경우는 많았거든요. 그래서 예를 들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소장되는 작품도 이렇게 나가는데 요즘은 이제 미술 품을 옮기는 그런 운송회사들이 잘 처리를 해주고 해서 큰 문제는 없어요. 그러고 정말 우리 작품이 해외에서 정말 아름다운 그런 미술품으로 각광받길 바라고 또 어떤 해외나 이런 곳에 그런 문제점이 없기 때문에 많이 사용을 해 주시면 정말 너무 감사한 마음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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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빛, 옻칠 전시에 전시된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유물들 Source: SBS / Leah Hyein Na
나혜인 PD: 장인님께서는 옻칠 기술을 잘 전수받으셨는데요. 이제 앞으로 이 기술을 어떻게 전수하실 것인가도 고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워낙 힘든 작업이라 후계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 계승 작업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손대현 장인: 그렇지 않아도 제가 한국 문화의 집이라는 코스 그곳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옻칠을 가르키고 있어요. 그래서 1년에 한 이제 50여 분의 이제 그 옻칠에 관심 가지신 분들이 와서 이제 배우고 또 나가서 직접 공방도 하고 계시고 또는 어떤 전시 작품을 냈다가 독일의 어떤 크리에이터 눈에 들어서 초대받아서 이제 해외에서 전시도 하는 제자들도 있고 이런 여러 가지 사례가 있어서 당연히 이제 어떤 옻칠에 무궁한 발전이 있으리라고 보고 제 개인적으로는 제 아들이 직접 이제 생활을 같이 하고 또 제 일을 전수받고 또 이제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제자 양성에도 사실은 열심히 이제 노력을 하고 있어요.

나혜인 PD: 아드님이 같이 기술을 배우시면 굉장히 든든하시겠어요.

손대현 장인: 네. 그 부분은 사실 상당히 든든하고 마음이 아주 편안한 그런 부분도 있죠.

나혜인 PD: 끝으로 이번 전시를 기대하는 우리 호주 한인 동포 여러분께 한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손대현 장인: 사실은 외국에 나와 계시고 생활을 하고 계시지만 아련한 추억 속에 어떤 어머니가 쓰는 자개장롱을 연상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그런 어떤 아름다운 우리 그 나전칠기 작품의 문화를 이곳에서 좀 더 보시고 느끼시면서 그 고국의 향수를 느끼시길 바라고요. 그리고 사실 우리나라의 낮은 칠기 기술은 정말 세계 최고의 전통공예 기술이에요. 그래서 그런 어떤 자부심 또 K-POP 요즘 항상 우리의 문화가 이렇게 알려지고 있는 상황에 우리의 그 고요한 나은 칠기 문화가 더욱더 외국에 알려지고 또 많이 아름다움으로 느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나혜인 PD: 서울시 무형문화재 1호 옻칠장 손대원 장인 님의 작품 여기 시드니 한국문화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손대현 장인: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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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드니한국문화원에 전시된 손대현 장인 작품들 Source: SBS / Leah Hyein 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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